Thursday, November 26, 2009

Antichrist



Antichrist




혼자 영화를 봤다. 그것도 Antichrist를 봤다.
Las Von Trier 감독 영화라서 봤는데. Time지 리뷰를 봤음 보지 말았어야 했겠지만, 난 리뷰가 좀 포인트를 이상한 데에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상이 어떤지 확인도 하고 또 재미도 볼 겸 (은근 고어를 혐오하면서도 밝히는 묘한 심리--호기심이라고 대중한테는 변명하지만 나도 모를 내 속이여, 흠...) 보기로 결정했다.
막상 보자고 마음을 먹으니, 상영영화관도 마음에 들었다. 옛날부터 영화선정을 꽤 잘 한다고 생각했던 작고 낡은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었는데, 고즈넉하고 깜둥이 꼬마들도 없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난 극장 갈 때마다 깜둥이 꼬마들이랑 싸우거든. 좀 떠들어야 말이지.

하여간, 스모키 화장을 떡칠하고 나름 새꼬까옷도 짠 입고 마빼보릿백을 들고 (무조건 가장 최근 생긴 백이 빼보릿)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멋진 여자인 양 나에게만 보이는 가상 오라를 뿜으며 외출을 감행했다. 첨엔 습관이 무서워서 똥꼬마 없이 다니는 게 심심하더니, 이젠 홀랑홀랑 혼자 다니는 게 참 맛이 쏠쏠하다. 아, 물론 쓸 수 있는 돈이 조금씩 있으니 그런 거겠지만. 이래서 사람들이 돈에 목숨 거나보다. 돈 버는 머쉰아 돈을 벌어다오, 너의 소원대로 말이지. 하여간 2pm과 리쌍과 Black Eyed Peas가 적절히 섞인 따끈한 씨디를 붕붕 튀기며 순식간에 난 극장에 도착을 했다. 화장하고 옷 챙겨 입고 나오는 날은 정말 애들이 너무 잘 해준다. 대접 완전 다름. 왠지 씁쓸.

팝콘을 사는데, 깜둥여직원이 참견을 한다. Antichrist 아주 graphic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내가 도중에 나와서 환불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왠지 더 기대만빵. 하지만 걱정하는 척을 좀 해주며, 오 진짜~? 라고 중얼거리며 극장에 입장했더니... damn.... what the fxxx.

혼자 극장 온 것도 용기였는데, 마침 영화는 Antichrist고, 거기에 예고도 틀어주지 않는 극장이 텅 비어있을 줄은 누가 상상했겠는지. 그렇게 조용~한 극장에 혼자 앉아 목 뒤로 무언가 슬금슬금 기어든다든지 차가운 팔이 목을 감싼다든지 등등의 환각을 맛 보며 심장박동수 혼자 올려가고 있던 터에 다행히 두 커플들이 들어 왔다. 한 커플은 커플이라기 보다는 모자 관계 정도로 보였지만, 모자가 절대 같이 보러 올 수 없는 영화이므로 모자는 아닐터. 그럼 저들의 관계는 대체 뭔가, 라는 주제로 또 예고상영도 없는 극장에서의 몇 분을 심심치 않게 보냈다. 생각해보니, 스킨쉽도 없었으니 나이차 커플도 분명 아니고. 하긴 나이차도 정도가 있는 근 스무살 이상 차이면 그건 범죄야. 어쨌든, 영화는 시작됐다.

음.... 사실 난 굉장히 릴렉싱한 영화였단 생각이 든다.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단 말이지. 정말 편안한 영상. 너무 편안한 영상. 영화지식이 달리는 관계로 정확한 기법명은 모르겠지만, 아..... 편안해. 역시 감독이 이름값을 하나 싶었다.
누구나 멋지다 여길 프롤로그엔 정말 화면 가득 뿅뿅중인 남녀 주요부위가 흑백에, 그것도 슬로우모션으로. 이 얘긴 내가 이 영화본 수다 떨 땐 꼭 해줘야 하는 얘기가 될 것 같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 이 영화 볼 사람 많을 듯. 하지만, 내가 편안하다고 느낀 부분은 꼭 프롤로그 영상 뿐이 아니다. 보는 내내, 누군가의 조용한 뇌를 작디작은 마이크로칩을 타고 아무도 몰래 소리 없이 헤집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나는 눈을 감고 있는데 눈꺼풀이 투명해서 내 머리 속으로 영상이 즉각 투영되는 느낌이랄까.
뒤로 갈수록 내용은 정말 난해했다. 저 여자가 대체 왜 저 난리인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결국은 오는 것이지. 그걸 너무 논리적으로 설명해 놓은 미국 여자 평론가 글을 읽고난 후에도, 뭐 그닥 무릎칠 정도로 통쾌한 느낌이 드는 건 아니다. 후반부로 들면서, 숙제가 필수구나, 라는 부담감이 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상이 주는 편안함. 주인공들 몸에서 피가 튀고 뭐하고 해도 그 묘한 편안함이 가시질 않았다. 마취 최면에 걸린 것처럼. 몸이 극도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손발이 물에 젖은 휴지처럼 무겁듯, 가장 신경이 모여 있는 곳들이 잘려나가는 씬에서도 난 주인공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을만큼 무겁고 무디게 처져 있었다.
생각해보니 벌써 향수가 생기는 영화가 되었다. 이게 뭔가 대체.
보고 나오면서는, 음, 왜 상영관 수가 이렇게 적은지 알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대체 뭔가.
다시 보러 가서는 그 맨날 있는 점원한테 뭐라고 얘길해야 하지. 분명 어머 저 미친 것 또 이거 보러 왔어, 저거 변태구만, 이렇게 생각할 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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